7장 2절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이다.
즉 구약은 율법의 시대였으나
예수님이 오시므로 해서
우리는 율법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을 비유적으로 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7장 4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율법에 매였던 우리의 옛 자아 또한
죽은 바가 되었고
예수님 안에 거하여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하셔서
우리 뜻대로 살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이다.
7장 5-6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죄의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어
죄로부터 해방되는 구원을 받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아담의 원죄로 인해
죄인으로 태어나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즉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기 전까지
우리는 육신적인 삶을 살면서
율법이 말하는 죄의 정욕이 이끄는 대로 살며
영적 사망의 열매를 맺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율법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새로운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게 되었다.
7장 7-8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그렇다고 율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율법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며
탐심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율법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내 자아가 살아 있어서
내 마음대로 하고 살았지만
율법을 알고 난 이후에는
내 죄가 밝히 드러나게 되고
내 자아는 죽게 되었다.
7장 9-11절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말씀이다.
내가 깨들은 바로는...
'율법을 모르고 살았을 때에는
내 자아가 살아 있어서 내 마음대로 살았으나
율법을 알게 되면서 내 죄가 드러나고
내 자아는 죄로 인해 죽게 되었다.
나를 살려야 할 율법이 오히려
나를 죽게 만들었다.
죄라는 것이 율법을 통해
나를 속이고 나를 죽게 만들었다'
사람이 자기가 죄인이라고 느껴지면
자아가 죽고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만약 법이 없는 세상에 산다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까?
우리 내면에서 나쁜 생각이 올라올 때가 있다.
때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혹은 그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양심이 발동해서이기도 하고
법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의 제약이 없다면
이 세상은 말 그대로 무법천지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는 죄인임을 알게 되었기에
율법 앞에서 자아를 내려놓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7장 12-13절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율법 자체는 선한 것이다.
즉 율법이 나를 사망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율법이 죄가 드러나도록 했기 때문에
죄로 인해 내가 죽게 된 것이다.
율법은 죄가 완전히 죄가 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보자면,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살인을 했다고 치자.
그런데 수사와 재판을 통해
살인죄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이 사람에게 죄명을 정할 수 없다.
하지만 수사를 통해 살인죄가 밝혀지고
재판을 통해 법률이 정한 바
살인죄에 대한 형량이 선고가 될 때
이 사람은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재판이
다 정의롭고 공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아무리 살인을 했어도
재판을 통해 죄에 대한 형량이 선고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살인죄로 처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죄인이
그 죄에 대해 댓가를 치루도록 하는
법이나 재판은
이 사회를 평화롭게 정의롭게 만드는
선한 것이 될 수 있다.
다만 법이나 재판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가 있다.
7장 18-21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며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바울의 이 고백과 깨달음은 참으로 귀하다.
예수님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구원을 받아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가고자 함일 것이다.
하지만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에 대한 회개가 따라야 한다.
예수님과 세례요한도 이 땅에 오셔서
맨 처음 하신 말씀이 회개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회개를 하려면 먼저
자신의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짓는 죄는 쉽게 깨달을 수 있지만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죄는
영적으로 성숙해지지 않으면
깨닫기가 쉽지 않으며,
또한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 가운데
짓는 죄는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그래서 회개의 영이 임하기를 날마다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바울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그러한 내면의 깊은 죄를 깨달았던 것이다.
7장 22-24절
‘네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겨내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거듭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죄인으로 태어나 육신을 갖고 살아가기에
육신적 자아와 거듭난 자아가
항상 서로 충돌한다.
선을 행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행동으로는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속에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죄성은 완전하게 제거되기 어렵다.
죄성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성화인데,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서기 전까지
계속 성화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특히 믿음이 어느 정도 성장한 사람이라면
드러나는 죄 보다도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죄성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아를 죽이는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이 싸움은 나이나 직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해야만 하는 그런 치열한 싸움이다.
그리고 매일 매 순간 해야 하는 싸움이기도 하다.
바울 또한 이러한 치열한 영적 싸움 가운데
스스로 곤고한 사람이라 고백한다.
영성이 깊은 사람일수록 그 싸움이 더 치열할 것이다.
더 깊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존경 받는 사도요,
또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던 바울이
자기 내면의 악한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무기력감에 빠졌겠는가?
이런 무기력감을 한 번쯤은 다들 느껴보았으리라.
그렇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고자 하는
선한 양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끝도 없이 우리 마음을
흔드는 미혹의 영들과 씨름해야 하는
약하디 약한 존재로서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
죄인 중의 괴수 같은 저를
아무 값 없이 구원에 이르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속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악한 생각들과
씨름하며 선한 열매 맺는 삶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영적 싸움 가운데 승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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