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7절 이후의 내용은
율법주의자인 유대인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
바울이 비판하는 내용들이 적혀있다.
2장 17-18절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
유대인은 율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며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또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한다.
2장 19-20절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그래서 율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어리석고 무지한 자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본이되어
그들을 가르치려고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2장 21-23잘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하지만 유대인의 말과는 달리
삶에서는 그렇지 못함을
바울은 비판하고 있다.
말로는 거룩한 척 율법적인 척하는데
정작 삶에서는 그렇지 못한 그런 행동을
성경에서는 ‘외식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유대인 중에서도 특히 바리새인은
외식하는 자들의 대표적 예로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해
예수님이 신랄하게 비판하신다.
마태복음 23장 15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이방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신전 물건을 도둑질했을 정도로
유대인들(이스라엘인)의 종교적 타락의 모습은
구약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사사기에서는 타락의 극치를 달리는
여러 장면들이 나타나는데,
그중 한 가지만 예로 든다면
사사기 19장의 ‘레위 사람의 첩’ 사건을 들 수 있다.
레위인은 다른 지파와 달리 구별된 지파이다.
민수기 18장 1절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조상의 가문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즉 다른 어떤 지파보다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구별된 그런 지파이다.
그런데 사사기 19장에서 레위인은,
거룩과 정결의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첩을 두는 1차적 범죄를 하였고,
그 첩이 집단 강간, 살해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첩을 12조각으로 나누어 다른 지파들에게 보냄으로서
11지파와 베냐민 지파간에 전쟁이 발발하고
결국에는 베냐민 지파가 거의 멸족당하기까지 하는
민족적 대참사가 발생하게 된다.
사사기 19장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잔인한 짓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사기 때는 그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영적으로
타락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로마서 2장에 나오는 유대인들 또한
종교적, 영적으로 타락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2장 24절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유대인들의 그런 모습으로 인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한다.
지금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로만 거룩한 척, 경건한 척하고
삶에서 악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며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욕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우리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믿는자들 중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 비판 받을만한 짓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
즉 거룩하고 경건한 삶,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삶,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삶
그래서 세상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삶을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47절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전도를 하려고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삶의 모습만으로도 얼마든지
전도가 가능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2장 25-26절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율법주의자인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할례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율법을 범하면 할례의 의미가 없어지며
오히려 무할례자(이방인)가 율법을 지키면
할례받은 것과 마찬가지이고
또한 율법주의자인 유대인들이
율법을 범하는 것에 대해 정죄할 것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즉 할례를 받았느냐
율법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2장 28절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은 모든 민족의 구원에 있다.
택함 받은 민족이라고 해서
다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이냐 아니냐, 할례를 받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또 삶이나 행함으로 보여주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구원해주신다.
2장 29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구약에서는 몸에 할례를 하였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이젠 몸에 할 필요가 없고
마음에 할례를 하면 된다.
이 ‘마음의 할례’의 의미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심으로 인해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성령님이 임재해 계신다.
그 성령님으로 인해 그 마음이
육신의 것이 아니라 영의 것으로 채워지고
늘 거룩하고 정결해짐으로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찬양과 예배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할 때
성령의 임재를 느끼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
이방인 된 제게도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삶으로, 행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자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날마다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그런 삶 살아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3장 19-31절(믿음과 칭의) (0) | 2025.02.07 |
---|---|
로마서 3장 1-18절(불의한자, 신실하신 하나님) (0) | 2025.02.06 |
로마서 2장 1~16절(판단의 죄) (0) | 2025.02.01 |
로마서 1장 18~32절(마음을 지키라) (0) | 2025.01.31 |
창세기 44장(마음과 생각과 성품을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 (0) | 2025.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