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사도행전 21장 1-14절(바울을 택하신 하나님의 뜻)

행복한예수바라기 2026. 2. 7. 11:43

211-4

1.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바울은 성령이 주신 감동으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설교한 뒤

밀레도를 떠나 고스와 로도를 거쳐

바다라로 가서 배를 타고 두로에 상륙한다.

 

 

그곳에서 만난 제자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한다.

그 이유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고난을 겪게 될지 제자들에게

성령이 알게 하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고난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215-6

5.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떠나며

그런 바울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라는 말은 정말 마음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사역의 중심에 있는 바울이

환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하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드렸겠는가?

하지만 단순히 환난을 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지 않았을까?

 

고난이든, 환난이든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라면 그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여정은 원래 고난과 환난의 길이요

좁은 길일 수밖에 없다.

 

누가복음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릴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17-12

7.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두로를 떠나 가이사랴에

도착하여 빌립의 집에 머물게 된다.

 

빌립은 일곱 집사 중 한 명으로서

사도행전 8장에서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주고 구원의 길로 인도한 뒤

영의 이끌림을 받아 순간 이동했던

그 빌립으로 신실한 믿음과 성령 충만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딸 넷도 다 예언의 은사를

받을 정도로 빌립의 집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던 것 같다.

 

그런데 유대에서 아가보라고 하는

한 선지자가 내려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 예언한다.

 

왜 주님은 선지자까지 보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전하게 하신 것일까?

 

사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로마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큰 사명

때문이다.

 

사도행전 231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바울 스스로도 로마에 가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사도행전 1921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소아시아와 유럽을 거쳐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에게 주어진

전도자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에 흔들림이 없게

하시려고 선지자를 보내신 것이 아닐까?

 

왜냐 하면 앞서 두로에서도 제자들이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했는데,

아가보 선지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다시 가지 말라고 권유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바울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주님이 바울을 테스트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바울의 굳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2113-14

13.바울이 대답하여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바울의 마음은 20장에서와 동일함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2023-24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이미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바울의 성정을 잘

알고 계셨기에 그를 이방 전도의

사명자로 택하셨을 것이다.

한번 굳은 결심을 하면 포기하지 않고

온몸과 마음과 힘을 다해

끝까지 가야 할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는 아무리 옳은 길이라 할지라도

너무 힘이 들면 포기하기도 하고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지 않는가?

 

예수님 또한 하나님 주신 사명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셨다.

나는 목숨까지 내어놓고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 아버지!

이방 전도의 큰 사명자로 바울을 택하신

것이 무엇 때문인지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복음을 증언하고자 하는

바울의 사명감을 저 또한 본받기 원합니다.

사명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의 그 마음을 저에게도 부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