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2장 2-3절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아직 가나안 땅 입성 전인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번에 걸친 전쟁을 통해 승리를 맛보게 해 주신다.
아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을
멸하게 하실 것임을 암시한 것 같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힘들지 않게 승리하게 해 주실 것임을---
그래서 그 소문을 들은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에게 멸하게 될까 봐 심히 두려워하였다.
22장 5-6절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두려움에 사로잡힌 발락은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불러 물어보려고 한다.
’발람‘이란 인물에 대해서 성경에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민수기 22장을 통해 발람은,
이방 족속이란 것과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선지자라는 것이다.
이방인인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는지,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선지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22장 7절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발락은 복채를 가진 사람들을 발람에게 보내며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보냄을 전하게 한다.
발람은 이방 족속이긴 하였지만,
여호와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미 몇 번의 전쟁도 승리하게 해 주셨음을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말을 전해 듣고
그들을 유숙하게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게 아니며
참 선지자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22장 12절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지도 말고 저주도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신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신다.
22장 17절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처음 하신 말씀에는 순종하여
발락이 보낸 자들에게 갈 수 없다고 하였으나,
발락이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서
그 마음을 유혹할만한 말을 전하자
발람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22장 18-19절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18절의 발람의 말과 19절의 발람의 말은
앞뒤가 다른 사람의 말처럼 보인다.
즉 말로는 은금을 주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없다고 하나,
속 마음은 그게 아닌 것이 보인다,
정말 18절 말이 진심이었다면
발락의 신하들을 유숙하게 하지 않고
바로 돌려보내야 했다.
또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을 다 주셨는데,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는 건
또 무슨 얼토당토 않은 말인가?
이 말은 혹시나 그 전과 다르게 가라고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는 말과 다름 없다.
즉 발람은 모압이 보낸 복채와 또 온갖 좋은 말에
이미 그 마음이 넘어 간 것이다.
22장 20절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왜 하나님은 가라고 하셨을까?
발람의 마음이 이미 흔들린 것을 아시고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회개하며
그 마음을 돌이키길 바라지 않으셨을까?
하지만 발람은 이미 발락이 던진 미끼에
마음이 빼앗겨서 영적으로 어두워진 상태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도 자기중심적이라
하나님의 말씀이나 주시는 감동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거나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든 그 마음의 동기가 불순하면
절대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정확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것이다.
22장 22-23절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하나님의 진노로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을 막으려고
길에 섰을 때 나귀의 눈에는 사자가 보였지만,
발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발람의 영적 눈이 가리워져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어떤 것을 향하면,
향하는 만큼 영적 민감성이 떨어진다.
하나님은 나귀가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시므로
발람이 깨닫기를 바라셨지만
발람이 끝끝내 깨닫지 못하자 결국
발람의 눈을 밝혀주셔서 사자를 보게 하신다.
그제서야 발람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죄를 고백한다.
22장 34절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
발람이 돌아가겠다고 하나,
여호와의 사자는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고 한다.
발람이 자신의 죄를 고백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돌아가지 않더라도 발락의 뜻대로는 되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발람이 발락에게 가기를 원치 않으셨지만,
발람이 가고자 했기 때문에 가도록 내버려 두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그래서 강권적으로 하시기도 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그저 바라보고만 계실 때도 있으시다.
물론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고
돌아오기도 하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우리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인해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발람은 한 마디로 참 선지자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도 못하는
그저 사술을 쓰는 한낱 점술가에 지나지 않은 사람이다.
24장 1절
’---전과 같이 점술을 쓰지 아니하고---‘라는 표현을 통해
그가 사술을 쓰는 선지자 임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는 하나
자기 좋을대로 선택하는
이기적이고 세상적인 이방 선지자다.
요한계시록에도 발람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요한계시록 2장14절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민수기에 발람의 얘기가 기록된 것은
잘못된 길을 가는 선지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발람은 자기 뜻대로 발락에게 갔지만,
하나님의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야 마는 분이시다.
비록 하나님의 처음 말씀을 어기고 발락에게 갔지만
4번에 걸쳐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말을 전하게 된다.
즉 이방 선지자의 입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일을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고 하면서도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자기 좋을대로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게 하여 주소서!
선지적 은사는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사명인데도,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불의를 저지르지 않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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