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2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그동안 자신감도 부족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이던 모세가,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히 건너게 하시고
애굽 군대는 다시 물로 덮어 멸하는 기적을 보이시자
이젠 하나님을 노래로 찬송할 정도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찬송할 뿐만 아니라
나의 하나님,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모세에게 확실한 믿음이 생겼음을 알 수 있는 고백이다.
아무리 능력이 없고 자신감이 없던 사람도
하나님이 기적을 계속적으로 보여주신다면
그 어찌 찬송하지 않고,
어찌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시대에 홍해를 가르는 기적은 아닐지라도,
죽어가던 생명이 살아나고,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믿으므로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또한 기적이 아니겠는가?
또 선교지에서는 수많은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이루지 못하실 일이 없고, 하실 수 없는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 9장 16절에서 하신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은 그대로 실현된다.
15장 14-15절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사람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으니
그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마땅한 것이다.
모세 뿐만 아니라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 모든 여인도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송한다.
15장 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이것은 천국에서 일어날 일들을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천국에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송한다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5장 12-13절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요한계시록 15장 2-4절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찬송하게 하려고 지었다고도 하셨다.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찬송가를 부르다 보면,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과 은혜가 마음에 느껴져
눈물이 날 때가 많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라고도 했으니
우리의 매일이 찬송하는 삶이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지 않으실까?
15장 22-23절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홍해의 기적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송하였는데,
다시 ’마라의 쓴 물‘이라는 광야의 고난을 직면한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한고비를 넘었나 싶으면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기적의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낙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기대해야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아직 어린아이 단계다.
그래서 또다시 모세를 원망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15장 24절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하나님은 우리를 늘 달아보시고,
우리의 믿음과 성품을 테스트 하신다.
15장 25-26절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왜 ’마라‘에서 시험하셨을까?
물은 곧 생명이다.
하나님은 마라에서 먹지 못하는
쓴 물을 단물로 바꿔주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의 말씀이니
그 말씀에 순종하면 생명이 구원을 받으나
그렇지 않으면 쓴 물을 먹을 수 밖에 없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여기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15장 27절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곁에 장막을 치니라‘
’12‘는 12지파, 12제자 등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역사)와 관련 있는
숫자(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를 곱한 수)이며,
’7‘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숫자라고 한다.
(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를 더한 수가 7임)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었다는 얘기는
엘림에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졌다는 의미인 것 같다.
마라에서 쓴 물을 마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잠시나마 실컷 물을 마시고
시원한 종려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천국 같은 시간을 허락하셨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하지만 계속 거기서 머물수는 없다.
가나안 땅을 향해 다시 힘든 여정을 걸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하게 하실 때가 있다.
뭔가 좋은 일들이 생기고, 하나님이 복을 부어주시는 것 같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우리는 때론 기쁘고 행복하지만,
때로는 힘들고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평강과 감사와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힘든 가운데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그 마음에 평강을 주신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이 땅에서의 삶이 비록 힘들고 고단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얻고
마음에 평강과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저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한결같은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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