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창세기 12장(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될 수 있었던 이유)

행복한예수바라기 2024. 1. 6. 10:56

창세기 1210-13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며 정말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람이었던 시절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위 말씀을 보면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애굽으로 갔으며,

또 자기 한목숨 살겠다고

자기 아내에게 누이라고 속이라는 사주를 한다.

그 결과 사라는 바로의 아내가 될 뻔하였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행동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도 있듯,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것이 부부인데,

자기 목숨을 위해 자기 아내를 남에게

아내 삼도록 내어준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아브람은 인격적으로 미숙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12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아내(누이)를 내어 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아브람은 많은 재물을 얻게 된다.

이때에도 사람이라면 양심의 가책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아브람의 심정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성숙한 인격의 사람이라면 이때에라도

그 재물을 거절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이런 장면은 20장에 한 번 더 나온다.

정말 아브람은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노아처럼 완전한 자를 쓰시기도 하지만,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점점 다듬고 고쳐서 쓰시기도 한다.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오랜 연단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그를 다듬고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야곱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또한 중요한 한 가지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가 고치고 다듬어서 쓸만한 사람인지 보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씨앗이 있었기에

그들을 다듬어서 사용하신 것이다.

 

우리 눈에 정말 신실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우리 눈에는 정말 부족함 투성이이고

믿음도 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눈에는 보석으로 보이는

그런 사람이 있음을 나는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되는 것이다.

 

주님!

주님의 일하심이 어찌나 오묘한지요?

우리가 감히 측량할 길 없는

하나님의 깊고 깊은 그 마음속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소서.

눈에 보이는대로 함부로 사람을 판단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 눈에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요,

다듬지 않은 보석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 또한 그런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