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1절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왜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났을까?
요셉의 사건 이후 극심한 슬픔에 잠긴 야곱을 보면서
유다는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먼저는 자책감이 들었을 것이고,
그런 악한 짓을 하게 만든 형제들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을 것이고,
요셉만 생각하는 아버지 야곱에 대한 원망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가족들을 보는 것이 심히 괴로워서 떠났던 것이 아닐까?
어쨌든 형제를 떠난 유다가 선택한 것은 이방인들이었고,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었다.
즉 영적 타락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두 아들이 죽게 되었고,
며느리 다말을 친정집으로 돌려보냈다.
다말이 왜 그토록 유다집의 후손을 잇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아무래도 하나님이 그 마음을 부어주셨으리라),
유다는 다말의 계략으로 자신의 며느리와 동침하게 된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유다는 다말을 징벌하기보다는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오히려 높여 칭찬한다.
유다에게 이런 마음을 부어주신 것도 역시 하나님이시다.
왜 다말이 그런 짓을 하게 되었는지
유다가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안을 잠시나마 열어주신 것이다.
시아버지를 속여 동침한 다말은
당당하게 예수님의 계보에 기록되었다.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밧세바)와 함께---
왜 하나님은 예수님의 계보에
여성들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고대로부터 여자는 보잘것없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미천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미천한 존재를 통해
예수님의 계보가 이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은 그런 미천한 존재들을 높여주시고
사용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도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추시고,
스스로 낮추는 자를 높여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게 하나 없는,
그저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만 구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또 한가지 우리가 눈 여겨 봐야할 것은
예수님의 계보에 기록된 여인들이 다 이방여인이라는 점이다.
왜 이방여인이었을까?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시작하셨지만,
그 완성은 이방민족을 통하여 이루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다말이 쌍둥이를 해산하고
아우가 먼저 나온 것도 마찬가지 의미다.
38장 28-29절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왜 쌍둥이고, 또 아우가 먼저 나오게 되었을까?
이 장면은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고,
하나님이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셨던 장면과 오버랩된다.
하나님 앞에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은 없다.
‘쌍둥이는 영적 쌍둥이인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을,
또 아우가 먼저 나옴은
마지막 때에 이방 민족을 사용하여
구속사를 완성해 가실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아버지!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저희를 택하시고 사랑하셔서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대한민국을 마지막 때에 사용하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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