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창세기 37장(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행복한예수바라기 2024. 1. 22. 20:24

 371-2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아버지가 거류하던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으며

이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또한 성취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부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성경을 읽다보면 야곱의 아들들의

심각한 죄성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4장에서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땅 사람들을 속여서 살인하는 큰 죄를 지었으며,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동침하는 음란죄를 지었다.

 

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그런데 372절에서는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의 잘못을

요셉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고 한다.

즉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 또한

어떤 죄를 지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8장에서는 유다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뿐만 아니라

창녀와 간음죄를 짓는 내용이 나온다.

야곱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있었을지 몰라도

아들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자녀의 성품이나 가치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부모이다.

자녀는 좋은 본이든 안 좋은 본이든 부모를 본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자녀를 완벽하게 키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죄를 지을 정도로

아들들의 양육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요셉에 대해서는

다른 아들과 달리 채색옷을 입힐 정도로 편애를 하고

드러내놓고 자녀를 차별하는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 옷을 지었더니

 

이런 연약한 야곱과 또 그의 아들들이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열방의 모든 민족을 축복하는 통로로 삼으셨다.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제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즉 야곱과 그의 후손들이 자격이 있어서

복의 통로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어떤 사명이 주어지거나

은사가 주어진 것에 대해

스스로를 특별하게 생각하거나

교만에 빠지면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이 필요에 의해서

그 사람을 사용하는 것일 뿐이고

필요해서 은사를 주신 것 뿐이기 때문에

내 의를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제일 쉽게 빠지는 죄가 교만인 것 같다.

틈만 나면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오고,

나보다 영적으로 잘난 사람을 보면

시기심이 올라오기도 하고...

교만한 자를 하나님은 절대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며

그런 자는 결코 하나님이 쓰실 수 없다.

교만이 올라오면 그 즉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못난 것 같고 부족한 것 같다고

낙심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부족한 자를 들어 쓰시기 때문이다.

잘난 사람을 쓰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그 사람을 통하여 능력을 드러내시곤 하신다는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면

때가 됐을 때 하나님이 사용하실 것이다.

 

3710-11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이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야곱은 요셉의 꿈에 대해 말로는 책망하지만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한다.

즉 하나님이 주셨던 언약의 말씀을 떠올렸을 것이다.

즉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어떤 계시를 주신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3721-22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헤치지 말자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이다.

장자로서의 가문에 대한 책임감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야곱은 르우벤이 자신의 첩과 동침하는 죄를 지었음에도

별다른 징계를 하거나 책망했다는 내용이 없다.

그렇기에 아버지에 대한 르우벤의 죄책감이

더 컸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래서 아버지인 야곱이

특별히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알고

그를 살려서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조차도 하나님의 섭리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요셉을 만약 형들이 죽였더라면

하나님의 구속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

 

37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이 문장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있는 듯하다.

채색옷은 형들과 요셉을 차별하는 야곱의 마음을 상징한다.

형들 또한 요셉과 똑같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지 않았을까?

레아가 야곱의 사랑을 원했으나 사랑 받지 못했던 것처럼

야곱의 다른 아들들 또한

야곱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원했던 것이리라.

 

또한 채색옷은 그동안 요셉이 누렸던

특별하고 축복된 삶을 상징한다.

형들이 이 채색옷을 벗긴다는 것은

요셉으로부터 아버지의 사랑과 축복을 벗겨내버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요셉에게 펼쳐질 험난한 인생을

미리 암시하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37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르우벤에 이어 유다 또한 요셉의 목숨을 구하는데

동참하며 요셉을 팔자고 제의한다.

이 또한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요셉이 애굽에 팔리지 않았더라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의 가족들을 구원하는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3731-34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 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야곱은 요셉에게서 들은 꿈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요셉을 통해 하나님이 언약을 성취해 가실 것이라

희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요셉이 죽은 것 자체도 슬펐겠지만

자신의 희망이 무너져내리는 것으로 인해

슬픔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런 방법을 통해

역사하실 수 밖에 없덨던 이유가 또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이외의 그 어떤 존재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야곱의 요셉을 향한 사랑은 특별했다.

그런 야곱에게서 요셉을 빼앗아 가신 것은

요셉을 향한 그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하심이 아니었겠는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특별히 사랑했기에

그 마음을 시험하셨던 것처럼

야곱 또한 요셉을 잃고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변치 않는지

시험하신 것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또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하므로

다른 아들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댓가지불의 의미도 있는 듯하다.

 

야곱이 요셉을 다시 만나기 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경에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왜 하나님이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아들을 데려가셨는지

기도하며 여쭤보지 않았을까?

또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이 아버지로서 아들들을 차별했던 것에 대해 

회개의 기도를 올려드리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그 슬픔과 절망감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달래지 않았을까?

 

주님!

하나님은 뜻하신 바를 이루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또 예상치 못한 고난의 길로 몰아가시기도 하시고,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

큰 슬픔과 절망을 맛보게도 하시는 분이심을 봅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지 못함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에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또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슬퍼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하소서.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저에게 주소서.